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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자 학교>‘성령충만’ 이란 무엇인가?(2)Fam Worship 2024. 4. 16. 19:21
이건 다윗의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거든요. 예수님의 이야기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이야기를 통해서 보시는 건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하고 비교도 안 되는 고통 속에 있었을 때에 내가 그를 어떻게 했는지 그 후에 시편 22편 이후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며 너희도 이걸 겪게 될 것이지만 소망을 가지라고 예언적으로 말씀하시는 것..
그것이 경배자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거에요.. 하나님의 비밀이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경배하는 자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이 시편이라는 것이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해요.
시편 42편을 보세요.
이 시편은 다윗의 시편이 아니지만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 지은 거에요.
또 다른 경배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윗에게만 집중하지 않는 거에요.
이 시편도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으로 느껴져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노래하신 것 같아요.
이 땅에서 광야의 삶을 사시면서 순간순간 “아버지여! 내가 아버지를 찾기를 사슴이 시냇물을 찾음 같이.. 그 목마름 같이 내가 당신을 찾습니다.”
예수님의 이 목마름이 요한복음 4장에서 여인에게 와서 “내가 목마르다. 물 좀 달라.” 하셨고요.. 이 목마름이 십자가 상에서 “내가 목마르다.” 까지 연결이 되요.
예수님이 이 땅에 사셨을 때 그분은 항상 목이 마르셨어요. 왜?
그 분의 목마름이 채워지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의 앞에서 그것이 채워지세요.
그런데 이 땅에 와서 자기가 생명줄을 계속 퍼줘야 되요.
항상 고갈하세요. 항상 목이 마르세요. 그래서 항상 산에 올라가세요.
그러고서 항상 기억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를 떠나가는 제자들.. 하나도 빠짐없이 도망가는 제자들..
사도요한 빼고.. 모두 도망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전에 하나님의 집으로 저들을 인도했던 나를 기억하며 내 마음이 낙망이 됐나이다.
그러면서 그 법정에 서서 그렇게 하셨겠죠.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는고.. 너는 오히려 아버지를 바라라. 나를 도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그러면서 법정에 서 계셨을거에요.
모든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마음을 이 경배자들은 깨닫고 그것을 노래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 가운데에.. 하나님의 앎을 써 있는 이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께
노래하고 고백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화답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끼리나 네 생물과 24장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나 사이에 화답이 이루어지거든요.
아버지께서 말씀으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셨어요.
그러면 내가 이것을 가지고 제가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요.
그러면 그것으로 인해 아버지가 저에게 화답을 하세요.
사실은 그것이 경배.. 하나님과의 그 있는 시간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저같은 경우는 여기 앉아서 아까 하는 것이 뭐냐면..
시편을 가지고 시편을 노래해요. 사실은 그게 새 노래에요.
근데 그것이 가장 파워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작곡한 찬양들도 은혜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자체로 하나님에게 올려드릴 때 파워가 있는 이유는..
거기에 음율이 좋고, 가사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가사가 저분의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그것을 그분에게 올려드리면서 “하나님! 당신이 이렇게 말하죠. 맞아요. 당신이 그런 분이에요.” 하고 그분께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분께서 그것을 듣고 “맞어. 맞어. 그런데 내가 그 일에 너를 포함시켰어.” “하나님! 하나님!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죠. 내가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내가 주님을 너무 갈망해요. 예수님처럼 주님을 갈망해요. 왜냐하면 주님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요.” 그렇게 하니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니가 나를 갈망하는 것보다 내가 너를 더 갈망해.” 그렇게 응답을 해오시죠.
그러면 그걸 듣고 “하나님! 그렇게 말씀하시니 너무 감사해요.” 하며 하나님께 노래를 하죠.
이렇게 하다보면 이것이 몇시간이 가는지 모르죠.
그러는동안에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리고 그 경배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오늘 살았던 그 경배가 내 안에서 살아서 남을 생명으로 걸어가게 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한 마디 말을 하면 그 말씀의 권능의 길이에요. 그것이 경배자가 가는 길이에요.
지금까지 나눈건 서론이고, 여러분들로 하여금 시편을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하는 거에요.
다윗과 시편기자는 이 시편을 딩딩딩딩 노래하면서 했어요.
양떼를 보면서 거기 딱 누워가지고, 양떼가 푸른 초장에 누워 있는 거 보고..
아! 내 모습 같다. 여호와는 ~ 이렇게 노래하다 보니까 이 시가 나왔어요.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그래서 요한계시록 5장에 보면 검은고와 금향로..
검은고가 하프에요. 경배하는 거구요.. 금향로.. 성도들의 기도.. 기도에요.
근데 사실은 그 2개가 다 경배에요.
왜냐하면 하프를 치고 하는 것은 작은 의미의 경배.. 금향로에 올려드리는 것은 기도..
결국은 기도와 작은 의미의 경배가 합해서.. 큰 의미의 경배에요.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하는 기도는 그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 나를 구원하소서. 하나님! 이렇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이것을 나에게 주소서. 내 병을 고치소서. 내 남편과 아내를 고치소서.’ 이런거.. 이 잡다한 소리하는거 없어요.
무슨 기도를 하냐면..
“하나님! 당신이 최고에요.” 그런거 해요.
그러니까 그게 기도라고 하기 보단 경배에요.
그래서 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에는 경배 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실은 주님께서 “여기에 기록된 것을 듣는 자와 읽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너 나가서 전도해라. 너 나가서 말씀전해라.” 이런 하라는 말이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이 다 하시고 천사들이 다 해요.
거기서 하나님은 딱 하나에요. “경배하라.”
사람들은 그걸 놓쳐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죽도록 공부만 해요.
근데 요한계시록에서 ‘지키라’ 하는 것이 뭐냐면..
“경배하라.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속지말고 나만 경배하라.”
그거 하나만 계속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걸 지키라는 거에요.
근데 그거 놓치고.. 첫째인, 둘째인 공부만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의 하시는 말과 초점이 안 맞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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