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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자 학교> ‘영생’이란 무엇인가? (5)Fam Worship 2024. 4. 14. 21:08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요. 보세요.
늦게 들어온 사람이 있어요. 우리 가운데 연약한 자가 있단 말이에요.
근데 그 자에게 하나님이, 이 주인이 나에게 한 데나리온 준다는 걸 줬단 말이에요.
그걸 보면서 2가지 태도를 취할 수가 있어요.
하나는 “와! 2시간 밖에 안하고 한 것도 없는 저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 저분.. 그러면 저렇게 착한 분이면 나같이 열심히 일한 자에겐 얼마나 많이 줄까. 저 사람보다 내가 5배 일했으니까 나는 다섯 데나리온 받을꺼야.” 하고 딱 기대할 수 있고요.
그 다음 두번째는 “와! 저렇게 일도 얼마 안하고 저렇게 약해서 지금 실망하고 있는 저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저분.. 저 주인은 정말 선하네. 내가 저 선한 분 앞에 서서 일한 것.. 그것만으로도 감격이다. 진짜 선하네.” 하고 감격하는 자리에 있을 수가 있어요.
이 두가지 자리에서 이 주인의 선하다는 것을 알고 그 선함을 이용해서 자기가 무엇인가를 더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 이 아침에 온 사람들의 모습이었어요.
은사사역이나 이 보통 세상에서 그런 사역하시는 분들이 바로 이 자리에요.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어요. 그 선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은혜를 부으세요.
그걸보고 거기서부터 무엇인가를 더 끌어내려고 해요.
감격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자리에 가기보다는..
그러니까 똑같이 선한 것을 보고.. “와! 주인이 선하다. 야! 정말 감격이네. 내가 저 분 밭에서 일한 것 만으로도 감격이다.”
한 달란트 이거 안 줘도 아무 상관이 없을 정도까지 감격하는 자리에 갈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으면 이 주인이 처음에 들어와서 수고한 그 사람을 말도 못하게 사랑했을거에요.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다. 너는 내 친구다.”
여기보면 주님이 그 중에 한 사람에게 “친구여.” 친구답게 굴지 않았거든요. 근데 주님은 “친구여.” 불러요.
왜냐하면 그게 주님의 소원이었어요.
아침에 일찍 온 자들이 보면서 옆에서 있을 때 나중에 온 사람들한테까지 선하게 하는 걸 보면서 “와! 정말 선하네. 나는 저 사람의 마음을 알기 원하고 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저 주인의 친구로 남기를 원해.” 라는 마음을 가지기를 원해서 주님은 아침에 데려온 자들은 일꾼이 아니라 친구가 되길 원했어요.
근데 이들은 일꾼으로 남길 원해요.
“날 일꾼 취급해서 나 많이 일했으니까 나중에 온 사람보다 나한테 돈 더 주세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주님의 소원은.. “너 먼저 들어왔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나갔다 들어오고 나갔다 들어오고 하는 거 봤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나중에 온 자에게도 너랑 같은 돈 주는 거 봤지.. 니가 내 마음 이해하지? 내 마음 알지?.. 그럼 넌 나의 친구야.”
그게 주님의 소원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친구여.” 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근데 친구가 되지 못하는 거에요. 삯군으로 남아서 돈을 더 받길 원하는 거에요.
왜 이런 결과가 나느냐?
주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초점이 없고, 내가 무엇을 얻는가에 있기 때문에요.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 제가 지금 예를 들어서 표현을 한건데.. 이런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써 있어요.
다윗의 이야기, 솔로몬의 이야기.. 읽으면 읽을수록 거기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선함을 보게 되요.
그러면 ‘이야~! 하나님이 이러셨네.. 세상에..’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요, 그렇게 되면 그분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포기해도 하나도 안 아깝게 되는데..”억지로 포기해라. 억지로 버려라. 억지로 너의..” 이게 안되는거죠.
주님은 분명히 “영생은 나를 사랑하는 거다. 나를 아는 거다.”
주님을 아는 방법은요.. 주님이 주신 이 말씀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것이 최고의 방법이에요. 그 길 외에는 사실 없어요.
여기 보면요 너무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요. 저는 주님의 말씀을 보면서 항상 주님께서 우리가 머리 나쁜지 알거든요.
천국 얘기를 우리가 땅에 있는 이 새머리로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풀어서 얘기를 하세요.
한장 속에 한 결론 끝나고, 두번째는 딴 결론으로 넘어가지 않고, 한 장하시고 그 뒤에 은근히 뒤에 흐름을 주세요.
그래서 보면 ‘아~ 이거구나.’ 라고 알게 하셔요.
지금 앞에 그 본문이 나오면서 주님이 그러죠.
마태복음 20장 16절 이와 같이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
그러면 우리가 줄 서 있잖아요. 그러면 먼저 된 자가 나중 됐어요.
그럼 나중된 자가 또 먼저 되요 안되요? 되요.
그럼 또 먼저 됐음 또 어떻게 되요? 또 나중이 되요.
나중 되면요? 또 먼저 되요.
영원히 나중 된 자로 남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먼저된 자로 남는 것도 아니에요.
이게 왔다갔다 하는데.. 내가 어떤 마음으로 있는냐가 문제겠죠.
주님의 선함과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느냐에 의해서 이것이 판가름이 나는 것 같애요.
그 다음에 본문을 보면 재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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